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20년 동안 중식당을 운영해온 양 모씨(63)는 최근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과거보다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매해 인건비까지 오르고 있어 가게 운영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양씨는 "가게를 닫고 월 200만원 정도 월세만 놓아도 지금보다 형편이 나아질 것 같아 임대사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양씨는 과거 6명이던 직원을 2년 전부터 절반 수준인 3명으로 줄여 버텨왔지만 더 이상은 한계라고 전했다.
얼어붙은 소비와 인건비 인상이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며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셈이다. 민간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소비절벽이 가팔라지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경제 현장의 모세혈관 역할을 해온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임대업자로 돌아서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까지 예고되면서 이 같은 `자포자기 자영업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임대업으로 방향타를 틀 수 있는 자영업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금 흐름이 꽉 막힐 정도로 막다른 길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아예 경제활동 자체를 중단할 판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50)는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한 2010년 초부터 장사를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손님이 줄면서 영업을 계속하는 게 오히려 손해인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들어 경영 악화 때문에 가게를 내놓은 곳을 주변에서 10곳 정도 봤다"며 "권리금을 낮춰서 울며 겨자 먹기로 팔고서라도 빨리 떠나려는 상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예품점을 운영하는 신 모씨(62)도 "인사동은 문화지구 규제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적인데 최근 불경기까지 겹쳐 없는 손님마저 끊어지니 가게를 운영하기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영세 자영업자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호텔은 최근 건물 1·2층에 있는 직영 레스토랑과 디저트 카페를 임대업장으로 전환했다. 고객 발길이 뜸해진 데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마저 올라 호텔 손익을 맞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호텔 관계자는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해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임대수익을 얻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소비절벽 후폭풍은 여름 한철 장사인 얼음공장 매상을 역신장시킬 정도로 경제 공식을 깨고 있다. 통상 얼음공장은 다른 계절보다 여름철에 수요가 두 배가량 급증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한 얼음공장은 평년 대비 10%가량 매출이 떨어졌다. 이 얼음공장 관계자는 "여름에는 얼음 수요가 급증해야 하는데 올해는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다"며 "그만큼 경기가 침체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 자영업자의 `현재 경기판단 CSI`는 68로 나타나 기준치인 100 대비 32포인트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지표는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 경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잣대로 100 미만이면 부정적 인식이 더 많다는 의미다. 6개월 후 경기 상황을 전망하는 `향후경기전망 CSI`에서도 자영업자는 79로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 상황과 시장 경쟁 심화,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상승 부담까지 더해진 결과로 분석된다.
영세 자영업자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아픈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세 자영업자"라며 "최저임금보다 못한 소득으로 견디는데도, 그렇다고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경제가 이제 노동자의 혹사와 저임금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영세 자영업자의 희생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총리는 "지난달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각종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꼬집은 뒤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진명은 기자 ballad@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