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5주년 앞두고 여전히 떠돌고 있는 ‘귀신’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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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5주년 앞두고 여전히 떠돌고 있는 ‘귀신’ 미스터리
  • 성기노
  • 승인 2016.02.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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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5주년 앞두고 여전히 떠돌고 있는 ‘귀신’ 미스터리

동일본 대지진은 사망 및 실종자만 2만 명이 넘는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아직도 3.11은 일본인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특히 피해지역에서는 아직도 죽은자들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귀신’출몰 목격담도 자주 등장한다. 야마가타시에 거주하는 괴담작가 쿠로키 아루지 씨는 피해지역에서 괴상한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뒤 ‘지진 괴담’이라는 ‘실화’를 쓰기도 했다. 다음에 소개할 이야기는 쿠로키 씨가 자신이 직접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쓴 논픽션과 올해 초 아사히신문 온라인에 보도된 ‘귀신 논문’ 기사를 참고했다.



-괴전화의 정체

피해 지역에 있는 규모가 큰 도시의 행정 사무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은 후 어떤 부서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일까. 그 부서의 전화는 발신 위치를 알려주는 액정 디스플레이가 붙어있다. 그리고 특정한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면 반드시 액정 디스플레이에 전화를 건 장소의 전화번호가 표시된다는 것이다. 그 번호는 그 도시에 있는 한 공공시설의 전화번호라고 한다. 하지만 그 시설은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에 휩쓸려 파괴되고 현재는 빈터로 돼 있다는 것이다. 즉, 전화선은커녕 건물 자체가 없는 것인데 그 시설의 발신번호가 찍힌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사무소 직원들은 이미 없어져버린 건물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대지진이 난 뒤 1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 무서운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직원 한 사람이 문제의 그 전화를 받았다. 그 직원은 조용히 수화기에 귀를 갖다댔다. 그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그 직원은 “아” 하는 짧은 말만 남긴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묻지마”라며 크게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날은 그렇게 모두들 더 이상 그 직원에게 전화를 받은 얘기를 묻지 않았다. 며칠 뒤 다른 직원이 술자리에서 “그때 무엇을 들었느냐”라고 끈질기게 묻자 전화를 받은 직원은 “ごぼご(고바고) ぼごぼ(보고보:하수구같은 물이 넘쳤을 때 물이 밀려오고 넘치는 의성어)”라며 “너무 많은 물이 넘치는 소리”라며 중얼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그 어떤 이야기도 더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전화가 오는 시간은 매번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 시간은 오후 3시경인데 대지진 때 해일이 들이닥친 시간이라고 한다(2시 46분).






-무릎이 스르르 ‘밀리는’ 느낌?

토호쿠 지방의 산리쿠 근처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 마을에 지진 후 편의점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개점 예정일이 되어도 오픈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편의점 점원은 오픈을 앞두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연수를 1주일 정도 하고 있었는데, 밤이 되면 이상한 현상이 잇따라 일어난다고 했다.


‘편의점 자동문이 사람이 드나들지도 않는데 마음대로 개폐한다’ ‘레지(입출금계산기)를 열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열린다’ ‘감시 카메라가 오작동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등의 이상한 일이 일어나 그는 가게 오픈 전에 그만두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개점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은 “그런 것은 드물지 않는 일이다. 이곳은 쓰나미로 당한 지역이기 때문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고 한다.


오픈 후 단골 손님 중 한명이 “뭔가 다리가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점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손님이 말하는 ‘밀리는’의 뜻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쇼핑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오려고 하면 뒤에서 무릎 주위를 엄청난 힘으로 스르르 미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때 그 밀리는 느낌이 정말 불쾌하고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돌풍이 강하게 불었다든지 바닥이 기울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새로 건축한 건물에 그런 치명적 결함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도대체 그 밀리는 느낌의 원인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던 점원이 갑자기 “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릎 부근에서 밀리는 느낌이라는 것이... 그것은 이 근처에 온 파도의 높이잖아요!”


그 말에 단골 손님도 ‘일 리가 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무릎 근처 높이까지 파도가 치면서 사람들의 다리가 물살에 밀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밀리는’ 기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안에서 마을로 가는 길 위의 그림자들


미야기 현 해안에 있는 한 도로에서의 이야기다. 한 남성이 밤늦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지나갔다. 운전자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자는 “이 밤에 헤드라이트가 보일 텐데 저렇게 위험하게 지나가려 하다니..” 생각하며 차에서 내려 무단횡단 하던 사람을 찾아봤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헛것을 본 것이다. 그러다 그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생각해보니 그 그림자는 해안에서 마을로 가는 도로를 건너려고 했던 것이다. 쓰나미가 해안에서 밀려오자 필사적으로 마을로 가는 길을 건너갔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생각났던 것이다. 한밤중에 수영을 하는 사람도 없었을 테고... 그 운전자는 “아, 옛날 그 사람들이 돌아온 거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서 잠시 합장을 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간사이에서 온 건설 근로자가 작업을 마치고 숙소 민박집까지 도보로 돌아갔다. 몇 미터를 걸어가다가 문득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동료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했지만 그림자는 무시한 채 도로를 횡단해 반쯤 부서진 건물이 늘어선 골목으로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림자가 바다에서 올라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쓰나미 이후 수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옛날 죽은 이의 망령이었던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쓰나미 이후 나오는 전형적인 귀신 이야기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바다에서 마을로 도망가는 길을 건너는 그림자라는 것이다.


-“남쪽 바다까지 가 주세요”

2016년 1월 일본 토호쿠지방에서는 눈길을 끄는 논문 하나가 발표됐다. 올해 봄에 동북학원대를 졸업할 예정인 쿠도 유카 씨(22.사진)는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시의 택시 운전자들이 체험한 ‘유령 현상’”을 테마로 졸업 논문을 썼다. 유카양은 동일본 대지진 뒤 피해지역에서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것을 직접 취재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50대의 한 택시 운전자가 유카 양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3월 11일 지진이 일어나고 몇 달 뒤인 초여름. 두꺼운 겨울 코트 차림의 한 여성이 이시노마키 역 근처에서 택시를 탄 뒤 “남쪽 바닷가까지 가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거기는 (쓰나미로 거의 폐허가 된 뒤) 이제 거의 공터밖에 없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그러면 나는 죽은 것입니까?”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고 한다. 택시기사가 놀라서 뒷좌석을 보니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40대 택시운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역시 8월인데 두꺼운 코트를 입은 20대 남성들이 탄 적이 있었다. 백미러를 보면 그들은 똑바로 앞을 가리키며 앉아있었다. 행선지를 묻고 출발했는데, 도착했을 때 아무도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카 양은 졸업 전 매주 이시노마키의 역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들에게 “지진 재해 후, 신경이 쓰이는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100 명 이상에게 질문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별다른 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7명 정도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닌 실제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들은 누군가를 태우면 반드시 미터기를 꺾어 손님을 태운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귀신’을 태운 뒤 미터기를 꺾었다가 뒤에 아무도 없게 된 것을 알고 택시기사가 대금을 변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건을 기록한 일기와 “부족금이 있습니다”라고 적힌 운전일보를 직접 보여준 기사도 있었다. 그렇게 태운 사람은 모두 비교적 젊은 남녀였다고 한다. 만약 희생자의 영혼이라고 하면... 유카 양은 “청소년은 꿈이 많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기 때문에 더 억울한 생각이 든다. (갑자기 죽게 된 사실을) 그 참을 수 없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자신들의 작은 개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택시를 매개체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카 양은 귀신을 체험했던 택시기사들이 모두 당시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라 귀신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소중한 체험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쓰나미로 이시노마키 역 근처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났기 때문에 그 지역의 슬픔을 매일 느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을 잃은 택시기사들은 그 슬픔을 귀신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며 “이런 일이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유카 양은 또 다른 쓰나미 피해지역인 아키타 현 출신이다. 지금까지 지진의 피해자 수는 “수천명”이라는 숫자밖에 파악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카 양은 이번 조사를 통해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각 특별한 죽음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유카 양을 지도했던 한 교수는 “금기시되기 십상인 ‘사자’에 대하여 지진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마주해야만 했는지를 밝히고 자 한다”고 말했다.


▲ 올해 봄에 동북학원대를 졸업할 예정인 쿠도 유카 씨(22)는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시의 택시 운전자들이 체험한 ‘유령 현상’”을 테마로 졸업 논문을 썼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일본인은 오랫동안 지진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순응하고 그 피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럼에도 소중한 가족들을 순식간에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이 대지진 피해지역의 생존자들 가슴속에 유령처럼 남아서 떠돌고 있다. 특히 생존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 때문에 그 어떤 메시지나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갑자기 이별을 했다. 그결과 생존한 가족들의 회한이나 그리움이 트라우마의 형태로 계속 남아 있다. 그런 그리움에 대한 정신적인 ‘씻김’ 현상이 바로 ‘귀신’이야기로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해지역의 귀신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일본의 한 주부는 “당시 가족들이 ‘도망가라’는 말도 못하고 갑자기 사라진 것 때문에 생존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미련이나 회한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그리움이나 앙금이 귀신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귀신 체험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고 한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피해지역의 귀신 이야기는 그 실제 여부를 떠나 갑자기 죽어버린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일본인 특유의 이별의식이자 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는 3월 11일이면 동일본 대지진이 난 지 5년이 된다. 일본 대지진의 귀신 이야기는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의 발현이지 않을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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