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잔을 옆에 두고 노트북으로 뭔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OL’들을 가끔 본 기억이 난다. 광채 찬란한 사과 마크와 여성정장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아리따운 아가씨의 트렌디한 조합이라니...
이 아저씨도 맥북프로를 산다면 스타벅스에 가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루룩 마시며 빛나는 사과의 위용을 뽐내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 아저씨도 이제 앱등이(애플과 곱등이의 합성어로써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크게 감명을 받아 애플의 추종자로 변하여 애플이 황당할 정도로 긍정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 레벨로 등극할 수 있겠구나 ㅎㅎ
이제 아이폰 플러스 6도 사서 맥북프로와 동기화 시켜서 진정한 애플유저로 거듭나야지... 여기에다 사진이 취미인 내게 맥북프로는 훌륭한 디스플레이어이자 저장고 노릇도 해주겠지... 라이카만의 색감을 맥북프로가 200% 이상 표현해줄 수 있겠지...
애플은 주로 편집전문가용으로 쓰이다가 최근 들어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렇게 맥북프로는 내 품에 들어왔고 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곧바로 보호필름을 붙여주는 가게를 찾아갔다. 나는 맥북프로 첫 개봉의 기쁨마저 그 주인에게 기꺼이 양보했고 비용은 20여만원에 달했다(여기에서 팀원들의 비난이 또 쏟아졌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직접 붙이면 절반 가격도 안 되는데, 역시 귀차니즘을 싫어하는 아저씨의 전형적 호갱행위라고 말했다). 드디어 말끔하고 투명하게 포장된 맥북프로를 품에 안아 보았다. 아, 이제 글도 애플 상징처럼 심플하고 섹시하게 잘 써지겠지.....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가 실망과 불편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윈도 체제에 오랫동안 적응돼 온 아재에게 맥북프로는 뭐랄까... 영국에서 유학할 때 처음으로 운전해본 오른쪽 핸들차처럼 불편하고 어색했다. 영국과 한국은 차선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가다보면 차가 반대편 차선으로 달릴 때가 종종 있었던 것처럼 맥북프로를 쓰다가 오른쪽에 으레 있는 숫자 키패드를 찾는 게 한두번이 아니었고, 한영변환 키도 복잡하고, 수많은 종류의 키 기능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터치패드도 속을 썩였다. 커서를 움직이는 게 왜 그리 힘든지... 부분복사를 하려고 문장이나 단어 지정을 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단축키 설명을 휴대폰에 저장해 열어보곤 하다가 이내 지워버렸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노트북 자체에 대한 부적응이라고 차치하더라도 정작 맥북프로의 문제는 홈페이지 액세스와 각종 결제를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컴퓨터라는 사실이다.
신한은행에 맥북프로에서 액세스가 안된다고 하자 상담원도 난감을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설명할지를 몰랐다.
일단 결제시스템 기능이 윈도에 비해 현저하게 뒤떨어졌다. 웬만한 사이트에서 결제를 하기란 불가능했다. 홈페이지도 윈도에 최적화돼 있는 게 대부분이라 맥북프로로 액세스해서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집사람의 외국인등록증 갱신을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 홈페이지의 예약 시스템에 들어가도 맥북프로는 맥을 못추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출입국관리소측에 항의했지만 ‘우리는 윈도체제를 우선시한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교보문고 책도, 휴지를 사고 결제를 하고 싶어도 되는 게 없었다. 영화 예매도 안 된다. 하다못해 은행 인터넷뱅킹을 개설하려 해도 무슨 키보드 보안 터치앱 설치가 미지원이라는 희한한 설명과 함께 바로 9부 능선에서 포기해야 했다.
전국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은행의 상황이 이러니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옆에서 내 불평을 듣다가 답답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박DJ는 “결제는 휴대폰으로 하세요”라는 쿨한 대안을 내게 주었다. 그래ㅡ 결제는 휴대폰으로... 그런데 이럴 거면 맥북프로를 왜 산거냐... 그냥 휴대폰으로 하면 되지... 아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