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문화유산 답습기 1. 순천 송광사~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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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문화유산 답습기 1. 순천 송광사~선암사
  • 김임수
  • 승인 2016.05.10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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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입니까?”

순천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미술평론가이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덧 자신과 연관검색어로 묶인 선암사를 두고 왠지 모르게 좋은 곳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나는 어쩐지 왜인지 모르게 좋다는 수식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것들은 대개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는 그 길을 걸어보고자 했다.




황금연휴라던 20165월 첫 주말. 처음으로 호남행 버스를 탔다. 출장차 기차를 타고 광주로, 비행기를 타고 여수로 간 일이 있었지만, 버스로 달려본 일은 없었다. 가면 좋을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알았지만 좀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행지로는 낯설고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야놀자 바로예약 어플을 받아 게스트하우스 예약도 단숨에 끝냈다. 스마트한 경험. 하지만 곧 모르는 발신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이 없다는 통보였다. 분명 어플을 통해 빈방이 있음을 확인하고 대금결제까지 했는데 어찌된 까닭일까. 중개업체와 숙박업체가 곧바로 연동되는 시스템은 아닌 듯했다. 결국 개인 계좌로 환불을 받은 뒤 다른 숙소를 잡아야 했다.




"모든게 다 그대로인 것 같아

한건 나홀로 가는 이 길과 싸늘히 식은 핫바"

-박경림 '안녕 핫바'



▲ 미국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중에서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지에서 맛집이란 어떤 기준이어야 할까. 별로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는 기분(kibun)’을 꼽는다. 영어 단어로까지 등재된 바로 그 '기분'을 맞춰줄 수 있는 곳. 이날은 혼자 남도기행에 나선 여행객을 얼마나 배려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순천 정락회관. 포털에서 순천역 맛집을 검색하면 가장 상위로 오는 소문난 곳이다. 늘 붐빈다는 이곳은 홀로인 나에게 얼마나 관대할까. 1인 손님보다 4인 가족을 받고 싶은, 주인의 기분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어서 오후 1시를 넘어 식당을 향했다. 그런데도 2~3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10~20분 기다렸을까.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나를 보더니 “아유 참, 이럴 때라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지만 잠시만 기다려”라더니 이내 자리로 안내했다. “유명하지만 혼자 온 여행객을 다소 배려하는 곳. 기꺼운 마음으로 2만원 지불하고 한우떡갈비 정식을 주문했다. 제철이 지난 꼬막과 조림생선, 떡갈비 두덩이를 찰나에 비워냈다.




배를 채웠으니 길을 나선다. 문득 궁금해졌다. 선암사와 송광사 중 어디서 출발하는 것이 현명할까. 유홍준 교수는 분명 선암사에서 송광사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그 반대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해서 111번 버스를 타고 송광사로 향했다(선암사 행은 1번 버스).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god '길'





순천 송광사.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묶이는 곳이다. 국내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사찰 입구에 조성된 편백나무숲을 지나니 색색이 병렬된 연등,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예상보다 인파로 번잡하지는 않았다.




벌써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유홍준 교수가 말했던 그곳은 '남도삼백리', '천년불심길'이라고도 불린다. 송광사는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조계산 불임암으로 뻗은 길도 있다.





학생, 한번 잘 생각해 봐. 여기 만만치 않아.

1시간쯤 걸었을까. 반대편에서 오던 중년 부부가 에둘러 조언했다. 역시 현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건 산책이 아니었다. 차라리 히말라야 트래킹 예습에 가까웠다. 유홍준 교수에게 묻고 싶습니다. 길이라면서요? 아름답다면서요? 을씨년스러운데? 무서운데?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시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절반을 지나면서 천년불심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가는 듯했다. 서울대 김 아무개 교수가 말한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것은 이런 의미였구나. 어른이 되고픈 자, 천년불심길을 걸어보시기를.




저녁 7시. 땅거미가 내려앉고 죽음의 뉘앙스가 드리웠다. 무신론자도 신을 찾게되는 시점. 부처님 하나님 알라신 동자승이여, 제발 이 길이 끝나게 해주세요.




그렇게 4시간여 쉬지 않고 걸었을까. 선암사로 가는 길, 표지판이 보인다. 나 해냈구나, 그리고 살았구나.



심신이 지쳤음에도 선암사 뒤편은 절경을 뽐냈다.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곳.





선암사에 핀 불두화. 수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헛꽃만 피우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




순천 풍미통닭은 다음을 기약. 내일은 보성으로 떠난다.


김임수 에디터 rock@featuring.co.kr



tip) 선암사에서 송광사, 송광사에서 선암사 중 어느 편이 좋을까? 나의 답은 선암사에서 출발하라는 것.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가는 길을 대략 6.5km, 조계산 고개를 두 번 넘어야 한다. 가장 높은 송광굴목재를 기준으로 송광사 2.5km, 선암사 4km로 나뉜다. 송광사에서 굴목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구간이 짧고 길이 잘 뻗어 있다. 선암사는 그보다 완만하나 변화무쌍하다. 내리막길에서 사고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암사에서 출발한 뒤 송광사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안전상 맞을 듯하다.


더 솔직한 심정은 왠지 모르게’ 권하고 싶지 않다. 특히 독일 철학자의 길이나 제주 올레길을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본다면(가능할까 싶다) 족히 5~6시간은 잡아야 한다. 차라리 선암사라면 선암사, 송광사라면 송광사를 보기를 권한다. 두 사찰이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산책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 길 위의 풍경은 꽤나 선명하지만 기실, 팔도 어디에서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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