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서 김종인이라는 ‘장사꾼’은 상당히 특이한 유형에 속한다. 그는 한 가게에서만 오랫동안 계파활동을 해온 것도 아니고, ‘경제 민주화’라는 상품 하나를 가지고 거의 30여년 동안 ‘독고다이’ 장사를 해오고 있다. 큰 가게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으레 그 가게 주인들은 그를 불러 대신 장사를 하게 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랬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그를 불렀다. 물론 그는 잘 나가가는 가게(신군부 국보위, 노태우 김대중 정권 등)에서도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있지만 그의 ‘상술’은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았을 때 빛을 발했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은 그가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거 같아 막판에 그를 내쫓아 버렸다. 그 뒤 문 전 대표가 다시 그를 불러 앉혀 좌판을 벌여주었고, 김종인은 지난 총선에서 나름대로 물건을 잘 팔아서 이익을 남겼다.

그 여세를 몰아 김종인은 지금 종업원에서 오너로 올라서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오너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개 종업원에서 대주주라도 되기 위해서 늦은 나이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그가 손쉽게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오래된 맛집을 한 입에 집어삼키기는 쉽지 않다. 그 가게에는 이미 오랫동안 견마지로로 수십년 동안 일을 해온 고참 종업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인의 인감도장을 노리고 있는’ 그를 눈치 챈 터줏대감들은 선거라는 좌판이 끝나자마자 즉각 그를 내쫓으려 했다. 그들은 주인에게 ‘저 사람이 당신 자리까지 차지하려 할 것이니 빨리 쫓아내야 한다’고 부추겼다. 선거 뒤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 조기 개최(라 쓰고 ‘김종인 이제 그만 물러나시지’로 읽는다)를 두고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파리 날리는 가게에 뛰어 들어 그래도 (호남에서는 거의 이익을 남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호객에 성공한 김종인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가게 주인과 고참들은 그에게 4개월(8-9월 전당대회 개최)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김종인은 ‘아직도 가게 매출 부진이 계속되니 내가 계속 중심에 서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고, 고참들이나 주인 주변 사람들은 ‘지난 4월 13일에 대박을 쳐서 매출을 많이 올렸으니 이제 성과급(비례대표직) 좀 받고 조용히 나가라’고 윽박지른다. ‘노회한 장사꾼’ 김종인이 보기에 그런 주장은 가소롭기 그지 없다. 지금까지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어떻게 빼다버렸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버티고 있는 김종인은 ‘그러면 내년 큰 시장에서 또 다시 쪽박을 차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난 4월의 매출은 그동안의 적자를 보전하는 보릿고개 시래기죽 수준이라는 것이다. 달콤한 죽 한그릇에 만족하다 보면 영원히 보릿고개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물건은 잘 팔지 못해도 오랫동안 주인과 가깝다는 이유 만으로 버티고 있는 다른 종업원들을 몰아내거나 조용히 입 닫고 살도록 해야 가게가 보릿고개를 면하고 체질을 개선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어떤 주장이 맞을까. 현재 더민주는 비상경영으로 먹고살 만해진 것일까, 아니면 겨우 연명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일까. 김종인이 과연 내년 큰 시장에서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쫓겨나게 될까. 소비자들은 현재 김종인이라는 종업원이 ‘한시적으로’ 어떻게 이 가게를 끌고갈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단 김종인의 전략은 이렇다. 최근 당직 개편을 통해 김종인은 자기가 부릴 수 있는 종업원들을 대거 기용했다. 변재일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앉히는 등 주요당직을 개편했고, 전국의 당 조직을 정비할 조직강화특별위원장에 자신의 오른팔 정장선 당 총무본부장을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전당대회까지의 ‘한시적’ 인사라고 보지만, 조직 연속성 상 신임 대표가 쉽게 김종인의 수족을 잘라내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종인이 조기전대까지 자기사람을 ‘무리를 해서라도’ 심어놓는 것은 물론 내년 대선을 대비한 사전 포석이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올 전당대회까지 김종인 체제로 세팅을 해서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놓으면 쉽게 뺏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김종인의 ‘희망’이다. 김종인은 전대까지 대과가 없다면 다른 고참들이 그를 당 대표로 합의추대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나를 더 써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다.
하지만 더민주 일각에서는 김종인 카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한번 쓴 세일즈 전략을 다시 쓰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이다. 내년의 큰 시장은 또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데 이미 한번 써먹은 카드로 다시 대박을 노리는 건 어리석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김종인 패러독스’가 도사리고 있다. 사실 더민주로선 체질개선을 위해 ‘경제할배’ 김종인이 지금도 필요하지만(그래서 한시적으로 장사를 더 맡긴 것이고), 역설적으로 김종인이 더민주의 최악의 독이 될 수도 있다. 내부 개혁과 계파청산을 위해 김종인이 필요하지만 대선을 놓고 보면 김종인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절대 강자가 없는 내년 대선은 어떤 대형 변수가 선거판을 지배할지 알 수 없다. 본 에디터는 이번 총선이 B급 태풍이라면 내년 대선은 특A급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파탄에 따른 민심의 분노가 이번 총선에서는 맛보기만 보여준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는 더 엄혹하고 준엄한 분노가 선거판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큰 선거는 ‘바람’과 ‘심리’(민심)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종인의 ‘경제 민주화’라는 상품은 총선이라는 자잘한 시장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이번 선거에서 살짝 발톱을 보인 민심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본다. 경제가 주된 화두가 될 수는 있지만 대선을 가르는 절대반지는 아닐 수도 있다. 내년 대선은 누가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한) 분노한 민심을 잘 추스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종인의 상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김종인의 상품 파괴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는 경제 민주화의 상징같은 존재다. 그 키워드는 내년 대선에서도 파괴력이 있을 것이다. 아주 유효한 카드다. 내년 대선의 기본 변수는 보수정권에 대한 심판과 야권의 수권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대권주자로 올라서려 한다면 그것으로 패망이다. 그 욕심을 버려야 한다. 김종인은 친문패권주의의 보완재 카드로서가 최상이다. 김종인은 새누리당 소비자들(중도 부동층)까지 가져올 수 있다. 시장 영역을 넓힌 것이 그가 이룬 최대 업적이다. 내년 대선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양 날개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국보위 출신 김종인은 그런 김대중 밑에서 비례대표(2004년 새천년민주당 제 17대 총선 선거대책공동위원장 역임)를 단 적이 있다. ‘상인적 현실감각’으로만 본다면 5공과 김대중을 오간 김종인의 상술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도 소비자들은 또 다시 김종인이라는 상품을 선택할까. 만약 그들이 ‘서생적 문제의식’에 갑자기 눈을 돌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터 '김종인 패러독스'가 시작되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