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8일이면 대형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은 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단어들이 차지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이른 오전부터 유명 개그맨 ‘유상무’라는 이름과 함께 생뚱맞게 ‘강남역’이라는 단어가 포털사이트에 등장했습니다.
‘유상무’와 ‘강남역’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이 연관된 사건사고라는 것입니다. 이날 새벽 3시, 서울 강남경찰서에는 20대 여성으로부터 한 통의 신고전화를 받았습니다.
“유상무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오전 8시 30분경 이 여성은 경찰에 전화해 신고를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유상무 소속사 측도 “여자친구와 술에 취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여자친구와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지려고 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거부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유상무 측의 설명입니다.

경찰이 모텔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유상무가 여자친구라는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는 등의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폭행은 친고죄가 아니기에 경찰은 정식절차를 밟아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반전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이 자신은 유상무의 여자친구도 아니며, 고소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며 입장을 다시 번복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꽃뱀에게 된통 걸렸다”
“무서워서 여자 만나겠나”
“합의금이 만족스럽지 못한가보다”
“여자 잘못 만나 이미지 다 깎아먹는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은 물론이고 SNS에도 #여성혐오 #꽃뱀 #김치년 등 여성비하 단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막상 여성들은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기 무섭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1시경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입니다. ‘강남역 묻지마’ ‘강남역 살인사건’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을 접한 여성들은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피해자 A 씨는 남자친구를 포함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잠깐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뒤 23살 꽃다운 나이였던 A 씨는 어깨와 왼쪽 가슴을 수차례 칼에 찔린 채 처참하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돌아오지 않는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A 씨의 남자친구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제대로 계단을 내려오지도 못했습니다. 휘청거리던 A 씨의 남자친구는 발버둥을 치면서 울부짖었고 그 모습은 건물 CCTV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

강남역 인근에서 붙잡힌 김 씨의 바지에는 흉기가 그대로 있었고 범행 동기를 묻자 저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김 씨와 A 씨는 생면부지의 사이였습니다.
사건이 알려지자 지금 강남역에서는 A 씨를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추모 쪽지와 국화꽃을 가득합니다. 또한 인터넷에서도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혐오하는 시선, 그런 시선이 두려운 여성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박민정 에디터 pop@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