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했다. 새누리당은 21세기 정치에서 여전히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을 두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후보로 최병렬 전 대표와 김황식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도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당이 위기이니까 ‘숙련’된 조교의 재시범이 필요하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굳이 “이회창 1935년생, 엘비스 프레스리나 달라이 라마와 동갑”이라는 나이에 대한 거부감을 따지는 게 아니다. 친박계가 이런 올드보이들의 영입을 검토하는 것에는 바로 친박계 중심의 새누리당의 포지셔닝을 나타내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 현재 친박계는 새누리당의 분당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를 아바타로 내세워 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먹으려고 한다. 비박계의 운신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또한 친박계는 비박계가 서둘러 짐보따리를 싸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을 온전히 친박계의 색깔로 다시 덧칠하려고 한다.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에는 그동안 원조보수와 중도보수의 계파 싸움이 치열했다. 김영삼이 몰고 온 상도동 중심의 중도보수 뿌리(민주계)가 지금까지 비박계를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면에서 친박계는 옛 민정계의 후계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제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도로 민정당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보수도 그냥 보수가 아니라 이념과 정체성에서 한층 더 우익성향이 짙어진 원조 보수당으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친박계는 아직도 한국 정치시장에서 자신들의 원조보수가 먹혀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차라리 어중이 떠중이 보수보다 확실한 보수의 색깔을 입히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박계는 분당을 하더라도 자칫 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 보수 2중대 또는 야당 2중대 사이에서 자칫 그들만의 당 색깔을 입히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문제는 친박계가 입히려는 원조보수의 색깔이 한국 정치지형에 어떤 파급을 가져다줄 것인가다. 다시 민정당? 수직적인 의사구조 결정과 권위적인 사고방식,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전부 종북세력으로 몰고가는 전근대적인 당이 민정당이었다. 이런 당을 다시 만든다고? 이게 과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부른 정계개편의 최선일까. 도로 민정당은 시대와 역사를 역행하는 그들만의 생명 연장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것을 그냥 비난만 하고 욕을 하게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이회창의 재호출은 친박계가 향후 지향하는 당 색깔을 생각해봤을 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회창도 나오고, 이인제도 다시 나오고, 최병렬도 다시 나오고... 무덤에 있는 박정희가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도로 민정당의 기류를 중도보수 성향의 비박계가 어떤 대안으로, 어떤 대응책으로 갈갈이 찢어진 보수의 지형도를 다시 꿰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현재의 비박계는 분당을 전제로 한 분명한 로드맵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 좀비들의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빨리 백신을 만들어 그 좀비 바이러스들을 처단하고 보수정당의 대안세력으로서 그 해답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비난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기분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박계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